게으름을 피우느라…

…‘창’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되도 않은 잡문을 거두고 빈 지면이 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뭔가를 채워 내 보내려는 마음은 욕심일까요, 불안일까요?^^ 아래 펼쳐놓은 글은 안식년 중 설교했던 ‘룻기’의 시작 대목입니다.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의 생각이 머물다 가는 요즘이어서, 지난 기록을 꺼내 보았습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 한 구절인데, ‘룻기’를 추억하면서 ‘룻기’를 다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짐이 너무 많아 책을 많이 못 들고 왔습니다. 고르고 골라 손에 들고 온 책 중 하나가 ‘위화’의 소설 입니다. ‘위화’는 (더 보기…)

‘영혼의 문둥병’

이곳에 나를 부려 놓았다 / 오래전 문둥이들의 집성촌 / 세상이 문둥이에게서 물러서듯 / 세상으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 이목구비 뭉개진, 환하디환한 태양 아래서 / 중개인은 말했지 / ‘명당이에요. 슬픔은 그들이 다 가져갔거든요.’ // 그래? 툭툭 떨어진 발가락 같은 돌맹이들 / 진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리는 실개천 / 나균인 듯 들러붙는 납거미 거미줄 / 돌마다 물마다 스민 얼 / 나는 손목 없는 그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 병이 깊어질수록 본능은 더 승해졌다지 // 그래선가? / 이 곳의 바람은 쓸개를 훑으며 분다 / 의뭉스런 새벽안개 / 화농의 상처 덧나는 석양의 때 /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한 울음소리 // 이곳에 와 나는 살아간다 / 죽어 간다 / (더 보기…)

‘모순’의 ‘믿음’

쥐 잡으려고 독약 섞어놓은 고구마를 / 쥐는 먹지 않고 강아지가 먹었어요 / 강아지는 마당에 사지를 퍼덕이며 / 앞산 메아리와 함께 죽어가요 / 강아지가 죽어가는 마당 울타리의 / 꽃들이 미쳤어요 / 종일 웃고 있어요 / 어머니는 그 울타리에 빨래를 널어요 / 웃고 있는 꽃들에게 찬물을 끼얹어요 /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마당을 지켜보던 / 뇌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나더러 여보라 불러요 – 최명란 순리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 다음에 저것이 따라야하고, 이런 모양은 저런 모양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야 ‘합’이 좋고, 보기에 좋고, 마음도 편합니다. 저것이 이것을 앞서거나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 뒤섞이면 이걸 어쩌나 싶고 불편해져요. 그런 관찰은 이해도, 해석도, 적용도 어려운 묵상이 됩니다. (더 보기…)

“숲 울타리를 쳐 두겠어”

내 마음에 숲 울타리를 쳐 두겠어 / 네가 만약에 말이야, 으르렁거리며 날 찾아온다면 / 내게 오는 동안 넌 내가 두른 초록 숲 울타리에서 / 길을 잃고 잠시 헤맸으면 해. // 꽃과 풀이 부르는 느린 노래, / 거미줄에 걸린 둥근 이슬에 젖어 / 네 걸음은 사뿐사뿐 더디어지고 / 헝클어진 가지마다 고개 숙여 안녕! / 하고 너는 인사를 하겠지. // 그래서 기어이 네가 날 찾아왔을 땐 /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늑대 대신 / 작은 새 한 마리 네 가슴에 들었으면 좋겠네. // 내 말을 너는 잘 알고 있지? // 우리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말고 / 작은 새들처럼 사이좋게 / 지지배배거리며 지내자는 말이야. 널 (더 보기…)

‘맛있는 곶감 맛’이 그리운 때

시가 발효되면 / 술이 될까 / 술이 되어 / 사람들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 // 그러고서는 / 오줌이 되고 / 똥이 되어 / 향그러운 흙이 될 수 있을까 // 다시 그 땅 위에서 / 파랗게 돋아나는 / 풀이나 나무가 될 수 있을까 / 풀잎 간지르는 바람이 될 수 있을까 // 시도 썩어야 한다 / 썩은 시에서 눈이 돋는다 윤재철 배우 김태리씨가 나오는 영화 는 영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앵글에 담긴 아름다운 영상을 ‘보며’ 기운이 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음식’은 또 어떤가요. 요리에는 젬병이라지만 ‘저건 따라해 봐야지’ 싶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물론, 따라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소박하지만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