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된 것 같은 용서

빗속에 교회에 갔다 / 용서를 빌었으나 잘 안 된 것 같고 / 나도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다 / 부러 먼 길로 돌아가는 길 / 비를 막기에는 우산이 점점 작아지는구나 / 주택가 골목길 한 발 앞서가던 할머니 / 길바닥에 찰싹 몸 붙인 나뭇잎들 사이에서 / 모과 한 알을 주워든다 / “뭘 믿는 게 있어 혼자 떨어진 게야, 응? / 무슨 마음으로 너 혼자서 떨어져 있는 게야“ /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품에 안고 조심스레 걸어간다 / 나도 저런 모과는 아니었는지 / 저런 바보 모과로 살고 있지나 않았는지 / 발소리 죽이며 뒤따르다 문득, / 누구 하나쯤은 용서해보리라 생각한다 – 박해석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있었다지요. (더 보기…)

“가, 가란 말이야!”

가장 사랑받는 성경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모르긴 해도 구약성경의 ‘룻기’가 순위에서 밀리지 않을 겁니다. 는 ‘룻’의 이름을 딴 성경입니다만, 룻기의 주도적인 인물은 룻이 아니라 나오미입니다. 사건의 도모에 있어서도, ‘텅빈’ 인생이 어떻게 ‘풍요’로 채워지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에 있어서도, 나오미가 주도적입니다. 룻기에서 나오미의 고백 중 가장 인상적/핵심적인 말은, 그녀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환대하는 성읍 여인들에게 했던 한 마디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룻1:20)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마라’는 ‘아프다, 쓰다’는 뜻이지요. 고향 성읍 여인들을 앞에 두고 나오미는 자기 인생이 기쁨의 인생이 아니라 쓰디 쓴 아픔의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오미의 고백은 비단 베들레헴 성읍 여인들을 향한 (더 보기…)

산 위의 동네

『중세의 기사와 영주들이 살던 고성(古城)은 높은 산 꼭대기나 강변의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느님은 천국에 계시고, 속세의 지배자는 땅 위의 가장 높고 든든한 곳에서 군림하고자 했다. // 요즘도 시장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의 산기슭에 별장이나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들이 많다. / 그러나 인구의 도시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가난한 일용 근로자들이 도시 주변의 산비탈 달동네에 모여 살게 되었다. 반정부 게릴라가 출몰하는 나라에서는 산 위의 빈민촌에 경찰도 출동을 꺼린다. 바로 이러한 변두리로 산성처럼 둘러싸인 도심에서 밤중에 바라보면, 산비탈 달동네의 불빛이 보석을 뿌려놓은 듯 찬란하다. / 눈이 부셔서 부끄러울 정도다. // 대성당과 구 시청과 오페라 극장이 몰려 있는 중심가에는 바로크를 모방한 19세기 건물들이 (더 보기…)

나의 노래는

어떤 말은 첫 마디부터 숨이 막힌다. 이를테면, 과외 한 번을 안 받고 교과서만 보면서 명문대학에 입학한 수험생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말이 그렇다. 수천 명 수만 명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목회가 제일 쉬웠어요.” 한다면 그것도 숨이 막히는 말이 될 것 같다. 오늘 살펴 읽은 시26편의 첫 구절도 그렇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내’가 ‘완전함’으로 행하였다는 거다. 그게 얼마나 분명했는지 하나님을 향해 ‘판단/재판해 달라’고 청원할 정도다. 완전함으로 행하기는커녕, 완전히 새가 된 것 같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네’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백 같아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게 숨 막혀 들을 건 아니다. 어떤 일에 있어 ‘우리도’ 우리의 행한 바에 잘못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 보기…)

‘삶의 글판’에 단 노래

예전에는 ‘교회 간다’ 하면 너나없이 성경책과 찬송가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주일 아침 열 한 시 즈음, 여기저기 성경/찬송을 들고 교회를 향하는 걸음은 그 자체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지요. 요즘은 교회마다 가 달려 있고, 성경구절과 찬송 가사를 스크린에 다 올려 줍니다. 아니면 손바닥만 한 스마트 폰 하나가 저 두꺼운 성경/찬송을 대신해 줍니다. 성경책이나 찬송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교회 가서 예배 ‘보는’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굳이 그걸 들고 다닌다는 건 괜히 성가시고 어쩐지 고루해 보이기까지 한 일이 되었습니다. 달라진 풍경입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달라진 예배-교회 풍경이 한 둘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안 바뀐 걸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라진 게 교회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