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를 먹듯

“자두 껍데기가 시다고 해서 자두가 신 과일은 아닐 것이며, 껍데기를 벗기고 먹으면 달다고 해서 마음 놓고 덥석 먹을 수 있는 과일도 아닐 것이며, 조심스럽게 발라 먹어야지. 씨앗 가까이 가면 껍데기 못잖게 시거든.” – 박경리 아내는 자두를 좋아 합니다. 단맛 가득 밴 자두는 말할 것도 없고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신맛 자두에도 고개 젓는 일이 없지요. ‘그 맛’에 먹는 거라나요. 제 기호는 조금 달라서, 잘 입에 대지 않는 과일 중 하나가 자두입니다. 자두를 꺼리는 건 껍질 때문인데, 베어 문 첫 입이 시고 베어 물 때마다 껍질이 씹히면 다시 신 맛이 들어 선뜻 손에 들지 않습니다. 자두 맛을 잘 모르는 까닭이지요. 하지만 간혹, (더 보기…)

예쁘기만 한데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 이철수 투숙객에 대한 호텔의 ‘환대’는 최고입니다. 이름 붙은 고급 호텔일수록 환대의 ‘별’이 더 붙겠지요, 별 다섯! 강성수/유명숙 집사님께서 미국 오셨을 때입니다. 여러 날 차를 몰고 서부 여행을 하던 중, 뉴멕시코 ‘하얀 사막(White Sands)’의 허름한 호텔(Inn)에서 하룻밤을 묵었답니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된 호텔이었습니다. 조식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직원들이 친절했습니다. ‘환대’ 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요즘말로 가성비가 ‘쩌는’ 호텔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환대’가 거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숙박비’를 지불했고, 그 ‘돈’에는 침대와 욕조 아침 먹거리가 포함되었고, 뿐만 아니라 그들(호텔)의 ‘환대’ 값까지 들어 있던 겁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돈’으로 ‘환대’를 (더 보기…)

나눔교회, 안지영 목사님

한 해 뿐이라지만 ‘살이’를 옮겨 산다는 게 가벼운 일은 아닙니다. 도시를 옮겨 사는 일도 그렇지만, 나라를 옮겨 사는 일은 그 번거로움이 더하겠지요. 이민 가방 여덟 개에는 네 식구의 기본적인 생필품을 담았을 뿐입니다. 준비해서 가져가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대부분은 가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서’ 준비한다지만 그게 참 난감한 일이지요. 한 해 살자고 새 것을 사들일 수는 없습니다. 사자면 쓰던 걸 사야하는데, 비용도 만만한 게 아닐 뿐더러 발품팔고 운반하고 하는 일이 장난이 아니지요. 수고를 줄이고 좀 수월하게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터 닦고 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가까운 친구가 있어 거반 준비를 도움 받았지요. 살 집을 계약해 놓고 탈 자동차를 예약해 (더 보기…)

잘 안 된 것 같은 용서

빗속에 교회에 갔다 / 용서를 빌었으나 잘 안 된 것 같고 / 나도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다 / 부러 먼 길로 돌아가는 길 / 비를 막기에는 우산이 점점 작아지는구나 / 주택가 골목길 한 발 앞서가던 할머니 / 길바닥에 찰싹 몸 붙인 나뭇잎들 사이에서 / 모과 한 알을 주워든다 / “뭘 믿는 게 있어 혼자 떨어진 게야, 응? / 무슨 마음으로 너 혼자서 떨어져 있는 게야“ /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품에 안고 조심스레 걸어간다 / 나도 저런 모과는 아니었는지 / 저런 바보 모과로 살고 있지나 않았는지 / 발소리 죽이며 뒤따르다 문득, / 누구 하나쯤은 용서해보리라 생각한다 – 박해석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있었다지요. (더 보기…)

“가, 가란 말이야!”

가장 사랑받는 성경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모르긴 해도 구약성경의 ‘룻기’가 순위에서 밀리지 않을 겁니다. 는 ‘룻’의 이름을 딴 성경입니다만, 룻기의 주도적인 인물은 룻이 아니라 나오미입니다. 사건의 도모에 있어서도, ‘텅빈’ 인생이 어떻게 ‘풍요’로 채워지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에 있어서도, 나오미가 주도적입니다. 룻기에서 나오미의 고백 중 가장 인상적/핵심적인 말은, 그녀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환대하는 성읍 여인들에게 했던 한 마디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룻1:20)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마라’는 ‘아프다, 쓰다’는 뜻이지요. 고향 성읍 여인들을 앞에 두고 나오미는 자기 인생이 기쁨의 인생이 아니라 쓰디 쓴 아픔의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오미의 고백은 비단 베들레헴 성읍 여인들을 향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