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쉬운 천국 (2021.07.11)

Comme il serait simple de ne se souvenir que des bons moments Et comme il serait facile d’echanger ces precieuses experiences contre de vains sentiments* *좋았던 것들만 기억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값비싼 경험을 팔아 값싼 감상을 사는 건 또 얼마나 쉬운가 얼마 전 해체된 2집에 실린 노래 ‘진주’ 가사 말미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에덴의 계절은 10월이었을 것’이라는 게 저의 지론(^^)인데, 사계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계절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너무 좋은 계절에는 ‘방학’도 없지요. 없는 방학에도 가을은 휙 지나가버립니다. 계절 내내 방학 같아서 그런 걸까요. 어떤 이는 천국이 지루할 거라고도 한다지만 그건 뭘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쉰 번 넘는 가을을 (더 보기…)

하늘이 낳은 아침 (2021.07.04)

원죄가 따로 없구나 못난 놈 낳으시고 어머니께서 드신 미역 값은 하는지 나만 믿고 졸졸 따르는 병아리 같은 자식놈들께 자신 없고 당신 없으면 못 산다는 속고 사는 아내에게, 모두에게 죄 짓고 사니 생일날 아침엔 왠지 쑥스럽고 미안하다 입 속에 씹히는 미역 한 줄기에도 쑥스럽고 출근길 밟히는 잡풀 하나에도 미안하다. – 구광렬 “온 동네 떠나갈듯 울어 젖히는 소리 / 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던 바로 그날이란다.” ‘가람과 뫼’가 부른 의 첫 소절입니다. 태어난 아기는 “두리둥실 귀여운 아기”이고, 그 “하얀 얼굴이” 첫 선을 보이던 그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더랍니다. 아기의 “첫울음 소리는 너무너무 컸더”랬는데, 마치 “천지개벽하며 울어 젖히는 소리” 같았답니다. “꿈속에 (더 보기…)

내 평생의 기도제목 (2021.06.27)

지금 당장 / 휘청거리는 나를 주차시켜야 한다 / 너무나 간절히 원하나 원할 수 없어 / 오늘도 넘지 말아야 될 황색선에 섰다가 / 하마터면 고삐 꿰어 질질 끌려갈 뻔했다 / 오오 넘어서고만 싶은 이 금지된 유혹 / 댄서의 호들갑처럼 할딱거리다가 / 후다닥 신발 고쳐 신은 적 한두 번 아니면서 / 이렇게 허겁지겁 수십 년을 살았다 / 선 너머 머리 한번 눕혔다고 뭐 죄송할 거 있나 / 속죄할 거 있나 / 냉담하게 드러누운 선 / 맹렬히 뚫고 / 오늘도 결코 항복하고 싶지 않은 – 최명란 두 달 간 이어진 묵상이 사흘 남겨 두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잠언집’과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편집한 ‘지혜자들의 잠언’을 (더 보기…)

아픔 없이 피는 꽃 (2021.06.20)

꽃이 대충 피더냐.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 내며 피더냐. 이 세상에 시끄러운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그 꽃들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이 모든 꽃은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 이산하 아직 찬기 다 가시지 않은 때였지요. 길을 걷다 꽃 핀 나무를 보고 걸음을 멈췄습니다. 가만히 꽃잎 바라보다 나무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조용히, 천천히 ‘나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피느라, 애·썼·다.” ‘꽃’만 보느라 애쓴 ‘나무’를 보지 못 한 날이 많았더라는 걸, 그날 아침 알았습니다. 한겨울 된서리를 발가벗고 견뎌내던 시절, (더 보기…)

그저 그렇다 해도(2021.06.13)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 내 영혼의 빈 터에 /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 그 다음 날. // 산다는 것과 / 아름다운 것과 /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 한창인 때에 /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 한 마리 새. // 정감에 그득찬 계절 / 슬픔과 기쁨의 주일, /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 새여 너는 / 낡은 목청을 뽑아라. // 살아서 / 좋은 일도 있었다고 / 나쁜 일도 있었다고 /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천상병 유월 중순, 한 낮 수은주가 제법 올랐습니다. 며칠 지나면 여름이 성큼 일 것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