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갈릴리 (2021.06.06)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 오기는 왔던가? /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 젖은 나비 날개처럼? /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 그때 너는 들었는지? /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 사랑은 소음이라고? /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 나희덕 <숲에 관한 기억>

사계절이 뚜렷한 땅에 ‘우리’가 삽니다. 봄이면 꽃 피고 여름에는 매미가 울지요. 가을에 단풍 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립니다. 다른 건 몰라도 계절 지루한 건 모르고 삽니다. 겨울이 길어 보이고 더러 지루함을 갖게 한다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거리 한 번 만 지나도 한겨울 지루함을 잊기 충분합니다. 좋은 일이지요. 헌데, 계절이 여러 번 바뀌니 성가신 일도 있습니다. 계절 따라 옷차림을 달리 해야 하고 침구도 바꿔줘야 합니다. 세간 살림 정리도 계절을 따라야지요. 그 또한 재미로 삼으면 성가심을 덜 수 있겠지요.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환경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가 더 중요한 법이지요.
‘봄’은 잠깐 지나가는 계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 봄은 참 길다 싶어요. 유월 한 주를 다 보냈는데도 아직 선선한 날이 많거든요. 피던 꽃은 진즉에 떨어졌는데도 ‘아직 봄인가’ 싶은 날들입니다. ‘봄인가 싶다’는 말이 재미있지요. 한 겨울 끄트머리에 달린 ‘찾아온 봄’을 두고 하는 말과, 한 여름 이마를 바라보는 ‘물러나는 봄’을 두고 하는 말의 기분이 다릅니다. ‘봄날은 간다’의 아쉬움보다는 ‘갈 테면 가라’는 뒤돌아선 마음이랄까요. 희한 한 게, 더운 날 ‘아직’이라 해서 이 계절에 봄 ‘기분’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긴 꽃 떨어진 봄이 뭔 볼품이 있을까요. 본래 ‘끝물’이 다 그런가요.
그게 참 씁쓸한 일입니다. 살다보니 ‘잘 떠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겠습니다. 떠난 자리의 흔적이 지저분하면 못 쓰는 법이니, 떠나야 할 때는 ‘구름 나그네’처럼 가벼워야 합니다. 정년이 다가오는 직장이 그렇고, 임종을 앞에 둔 목숨이 그렇습니다. 뿐일까요. 일상의 소소한 ‘떠남’이 다 그렇습니다. ‘잘 떠나는 것’만큼 ‘잘 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꽃 피는 춘 삼월이 좋다지만, 그걸 항아리에 담아 붙잡아 둘 수는 없습니다. ‘지나 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니, 잘 가라고 손 붙들어 주고 그 손 잘 놓아 주어야지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떠나는 것도 보내는 것도 서툽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1:9) 삼 년 여,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눈앞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몇은 예수의 빈 무덤도 보았지요. ‘고기나 잡으려 가련다’ 그물을 들고 나선 제자와 ‘나도 가련다’ 따라 나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사십일을 함께 지낸 제자들은 이제 예수의 ‘올려 짐’을 ‘눈앞에서’ 봅니다. ‘눈앞에서’ 사라진 예수의 모습도 보았겠지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 오기는 왔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서툴고,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0,11) 부활하신 예수께서 놀라 자빠질 뻔한 여인들에게 그러셨다지요. “가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보자고 전하거라.”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 천사들은 ‘하늘’이 아니라 다시 저 ‘갈릴리’를 보여 주셨던 걸까요. ‘봄’은 끝물이고, 곧 ‘여름’이겠지만, 내 눈 닿는 곳은 다시 갈릴리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