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길 풍경 (21.05.16)

쎄리가 팔려갔다, 할머니는 막내를 업고 / 방죽머리까지 따라 나가 /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주었다 // 이튿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 응앙응앙- 문살 긁으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빗속을 뚫고 / 읍내 삼십 리 길을 /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쳐 온 것이었다 // “영물이여, 영물이여……” / 할머니는 하얀 행주로 쎄리 몸뚱이를 닦아주고 / 쎄리는 꽃잎 같은 혀로 / 할머니 손등을 핥아 주었다 // 날이 밝았다 / 문 밖에 개장수가 서 있었다 / 납죽 배를 깔고 파들파들 떨며 / 슬픈 눈빛으로 식구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 스피커 줄에 묶여 / 자운영 꽃 붉은 논둑길 따라 / 멀리 희미한 한 개 점으로 지워져가던 쎄리……

– 김용화 <쎄리>

지금은 보기 어렵습니다만 ‘개장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방 안으로 ‘개’를 ‘모셔’ 들인 게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개’를 다 마당에서 길렀지요. 사람 먹고 남은 음식을 ‘개밥그릇’에 담아 먹였고, 나무로 짠 허름한 ‘개집’에 들여 재웠습니다. 한낮이 불볕 같은 여름에도, 개밥이 꽁꽁 얼어붙는 정월에도, ‘개’는 ‘마당’을 지켰습니다. 개 몸에 옷을 맞춰 입히고, 개 발에 신을 신기고, 심지어 유모차에 태워 유람시키는 시대 정서에 비추자면 낯설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그럼에도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그 시절에 생겨난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팔자’는 개가 더 좋은 모양입니다.^^
좋아 보이는 팔자가 그저 부럽기만 한 것인지, 개 팔자 부럽다고 개가 되어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아봐야 ‘개 팔자’는 ‘개 팔자’니까요. ‘개 팔자’가 ‘개’를 ‘팔자’가 되기 때문이기도 할까요. 그 시절 ‘개장수’는 개들에게 저승사자와 다름없었습니다. 개가 ‘영물은 영물이어서’ 그 손에 넘어가 닥칠 운명을 다 알았던 모양입니다. 한 솥에서 난 밥을 먹은 처지에 개를 판 주인 마음도 좋을 리는 없습니다. 돈이 궁해 팔아 넘겼다지만, 왜 짠한 마음 안 들까요. “빗속을 뚫고 읍내 삼십 리 길을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쳐 온” ‘쎄리’가 “할머니 손등을 핥아” 줄 때, 개 판 돈 돌려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겠지요.
개도 사람을 알아 봐요. 개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개도 어디가 죽을 길이고 어디가 살 길인지를 압니다. 다음 날 아침 “문 밖에 개장수가 서 있”을 때, “납죽 배를 깔고 파들파들 떨며 슬픈 눈빛으로 식구들을 번갈아 쳐다” 볼 때, 그깟 돈 몇 푼을 집어 던지지 못하는 주인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끝내 “스피커 줄에 묶여” 개장수 손에 끌려가는 ‘쎄리’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노라면 해가 뜨지 않길 바라는 날도 있는 거지요. 그 날 아침, 어김없이 떠 오른 해는 개장수에게나 밝은 태양이었을 겁니다. 그날 밤, 모두 안녕했을까요. 개장수 집 사슬을 풀지 못한 ‘쎄리’가 할머니 꿈에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을까요.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잠7:8-9) ‘내 집 들창으로’ 그 모습을 내다보는 지혜자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저 골목길 풍경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묵상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게 어떤 골목인지, 돌아선 골목에서 그가 맞을 ‘밤’을 내다보며 혀를 끌끌 찹니다. ‘쎄리’는 가고 싶지 않을 길을 개장수 손에 ‘끌려’ 갔다지만, 개장수 ‘스피커 줄에’ 자기 목을 멘 저 젊은이는 제 발로 그 골목을 돌아섰습니다. ‘개만도 못해 보이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고 보면 ‘개 팔자’ 운운 할 것도 아닙니다. 내가 돌아선 골목길을 다시 살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