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문둥병’

이곳에 나를 부려 놓았다 / 오래전 문둥이들의 집성촌 / 세상이 문둥이에게서 물러서듯 / 세상으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 이목구비 뭉개진, 환하디환한 태양 아래서 / 중개인은 말했지 / ‘명당이에요. 슬픔은 그들이 다 가져갔거든요.’ // 그래? 툭툭 떨어진 발가락 같은 돌맹이들 / 진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리는 실개천 / 나균인 듯 들러붙는 납거미 거미줄 / 돌마다 물마다 스민 얼 / 나는 손목 없는 그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 병이 깊어질수록 본능은 더 승해졌다지 // 그래선가? / 이 곳의 바람은 쓸개를 훑으며 분다 / 의뭉스런 새벽안개 / 화농의 상처 덧나는 석양의 때 /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한 울음소리 // 이곳에 와 나는 살아간다 / 죽어 간다 / 영혼의 문둥병자가 되어 / 잊고, 잊혀진 채 / 뭉텅뭉텅 문드러지는 살점 / 내 몸 냄새를 맡는다 / 먼 훗날, 누군가 이 곳에 들러 같은 말을 들으리라 / ‘명당이에요. 슬픔은 그들이 다 가져갔거든요.’
– 강기원 <문둥병자>

‘시골에 가서 살고 싶어요.’ 일상이 무뎌지거나 일상에 지치면 간혹 한 번씩 해 보는 말 일 겁니다. 대개는 그냥 해 보는 말에 그치겠지만, 더러는 ‘씨’가 된 말을 주어 담지 않고 잘 보듬어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개 ‘시골살이’를 일종의 ‘피정’이나 ‘퇴수(retreat)’로 여기는 마음이 크겠는데, 실은 그게 생각 같지 않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세상으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짐을 쌌으나 물러선 거기도 세상 밖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세상 아닌 세상’이 또 어디 있을까요. 뒤돌아서든 뒷걸음을 치든, ‘거기’도 ‘세상’이고 어쩌면 더 혹독한 세상일지 모릅니다. 살다보면 돌아설 수도 물러설 수도 있지만, 그게 ‘더 나은 세상’을 바란 것이라면 실망이 클 겁니다.
“이곳에 나를 부려 놓았다.” ‘나은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나’를 부려 놓았습니다. 우습지요. ‘그들이 다 가져간 슬픔’이란 게 어디 있을까요. 그 좋은 ‘명당’을 소개하는 중개업자는 왜 ‘소개’만하고 그 동네에 집 짓고 살지 않는 답니까. 다 알고 찾아와 ‘나’를 부려놓은 겁니다. ‘돌맹이’ 하나에 “툭툭 떨어진 발가락”과 ‘실개천’을 타고 흐르는 ‘진물’을 다 ‘보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돌 하나, 물 한 줄기, 거미줄 한 움큼, 돌아선 골목 들어선 가옥마다 “손목 없는 그들” 모습이 가득했으니까요. 그러니 ‘이곳에 나를 부려 놓고’ 씻은 듯 슬픔을 지워가며 살려는 게 아닙니다. 외려 그들이 내민 ‘손목 없는 슬픔’을 붙잡아 ‘악수’하려고 ‘이곳’에 나를 부려 놓은 겁니다.
소란한 세상 지겹다고, 조용한 천국을 찾아 ‘여기’ 온 게 아니었습니다. ‘쓸개를 훑으며 부는 바람’을 맞고, 겉과 속이 같지 않은 “의뭉스런 새벽안개”와 곪아터진 “화농의 상처 덧나는 석양의 때”를 아침저녁으로 갈아입으며 살겠다고 ‘이곳’에 나를 부려 놓은 겁니다. ‘여기’가 성소여서, ‘이곳’에 부려 살면 고약한 본능을 잠재울 수 있을까, 언감생심입니다. 꿈도 꿔 보지 않은 일입니다. 도리어 “병이 깊어질수록 본능은 더 승해졌”다더라는 걸 다 알고 “이곳에 나를 부려” 놓았습니다.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한 울음소리”가 내 썩어 문드러지지 못한 본성을 쭈뼛하게 깨우는, 이 소름 돋는 ‘명당’에 ‘나를 부려 놓고’ “이곳에 와 나는 살아”갑니다. 아니, ‘이곳’에서 내가 “죽어”갑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답니다. 성소가 있는 ‘거룩한 성’을 보며 왜 눈물이 나셨을까요. 티끌만한 ‘부정’도 타지 않으려 문둥병자 내 쫓고 세리와 죄인들을 멀리하면서 지켜낸 ‘거룩’이었습니다. 그러느라 푹푹 썩어 들어갔다지요. 살 썩은 냄새 성전 가득하고 “뭉텅뭉텅 문드러지는 살점”이 제사장들의 ‘에봇’에 들러붙어 있습니다. 죽어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누구라서, 어디라서 ‘죽어가지’ 않는 삶이 있을까요. “오래전 문둥이들의 집성촌”에서만 죽어 나간 건 아닙니다. 죽어 나가지 않는 ‘세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몸 냄새를 맡지 못해 오늘도 멀쩡하게 ‘사는 줄’ 압니다. 하여, “영혼의 문둥병자가 되어” 예수께서 ‘이곳’에 당신을 ‘부려 놓으셨던’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