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곶감 맛’이 그리운 때

시가 발효되면 / 술이 될까 / 술이 되어 / 사람들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 // 그러고서는 / 오줌이 되고 / 똥이 되어 / 향그러운 흙이 될 수 있을까 // 다시 그 땅 위에서 / 파랗게 돋아나는 / 풀이나 나무가 될 수 있을까 / 풀잎 간지르는 바람이 될 수 있을까 // 시도 썩어야 한다 / 썩은 시에서 눈이 돋는다
윤재철 <썩은 시>

배우 김태리씨가 나오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영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앵글에 담긴 아름다운 영상을 ‘보며’ 기운이 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음식’은 또 어떤가요. 요리에는 젬병이라지만 ‘저건 따라해 봐야지’ 싶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물론, 따라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소박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적어보이지만 충분한 ‘밥상의 향연’이랄까요. 들끓는 잔치음식 아니지만 두 세 사람 아니, 혼자라도 얼마든지 잔치가 되는 신기하고 신비한 밥상입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음식이 막걸리입니다. 서민들의 고된 노동 뒤에는 한 모금 시원한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던 가요. 일 끝나는 시간과 막걸리 익는 시간은 기다림이 닮았지요. 고슬 밥을 짓고 누룩을 넣어 다 익기까지 ‘술’은 아직 술이 아닙니다. 굳이 ‘술’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막걸리의 누룩은 어른의 맛을 낸다”는데, ‘엿기름’이 ‘누룩’을 대신하면 ‘식혜’가 된다더군요. 그 또한 하룻밤 고이 기다려 얻은 기가 막힌 맛이겠습니다. 그렇게 기다려 얻은 ‘기가 막힌 맛’이 ‘발효’, 곧 ‘썩은 맛’이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맛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다 ‘썩은 맛’을 기다리는 시간은 아니지요. 감을 깎아 말려 곶감을 만드는 시간도 기다림이고, 수제비 한 그릇에 담긴 밀가루 반죽도 기다림입니다. 썩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썩지 않도록 기다리는 시간도 있는 거고, 그건 또 그것대로의 ‘기다림의 맛’이 있는 거지요. 그런데, ‘썩는 기다림’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맛이라는 게 있습니다. 식혜와 막걸리만 아니라 ‘홍어’ 삭힌 기가 막힌 맛도 다 기다림입니다. 익은 김치, 묵은 김치의 쩡한 맛과 된장 한 스푼의 구수함도 기다림입니다.
그게 음식만 그런 건 아닌 가 봅니다. ‘시(詩)’도 그렇다는 거지요. ‘시’라는 것이 고두 밥 멀쩡한 모습보다, 잘 익은 막걸리처럼 취하게 하려는 맛이 그만 인 건가요. 잘 지어놓은 한 끼 밥상이란 더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시인들은 그 밥상 ‘너머’를 꿈꾸는 가 봅니다. ‘발효되’고 “술이 되어 / 사람들을 취하게 할 수 있을까”하며 시를 짓는 거지요. “오줌이 되고 / 똥이 되”는 건 매 한 가지겠으나, ‘똥, 오줌’으로라도 “향그러운 흙이 될 수 있”기를 꿈꾸지 않는다면 시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시도 썩어야 한다”는.
누구라도 예수님 하신 말씀 한마디가 떠오를 겁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 길’이 그랬듯,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요12:26)하신 ‘제자의 길’ 또한 ‘향기롭게 썩은 맛’이어야 했던 거지요. 그 맛으로 땅을 살리고 하늘을 열어야 했습니다. “향그러운 흙이” 되어 “다시 그 땅 위에서 / 파랗게 돋아나는 / 풀이나 나무가” 되고, “풀잎 간지르는 바람이”되는 ‘썩은 맛.’
‘썩은 맛’으로 익는 시간을 ‘아깝다’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곱게 썩는 법을 몰라 하는 말이지요. ‘향기롭게 썩는’ ‘비밀의 문’을 열어보지 못한 까닭입니다. 빗장 쳐두고 돌아선 걸음, 예수 십자가를 외면한 그 자리에 ‘썩은 내’가 납니다. ‘향기롭게 썩지 못한’ 고약하고 지독한 악취, ‘향기’가 아니라 ‘냄새’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주무르다 보면 겨울쯤에는 진짜로 부드러운 곶감이 되거든?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가 있는거야.” 겨울 지나는 자리, ‘정말 맛있는 곶감’ 맛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