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더 이상 너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 내가 날아갔을 때 // 네 숲에 사는 새들은 목이 쉬었다
– 송기원 <새>
지난 목요일, 박양순 어머님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눈물 적신 지체들이 여럿이었더랍니다. ‘더 이상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곳으로 날아갔을 때, ‘그 숲에 살던 새들’의 ‘목 쉰 울음’이 들렸습니다. 아래 옮긴 글은 어머님의 입관예배에서 나눈 설교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관원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채찍에 맞고 끝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작은 흔적을 담아 보려는 시간이지요. 십자가 형 선고를 받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도 언덕까지 이르는 길을 <비아돌로로사>라 부릅니다. <비아돌로로사>를 지나실 때, 예수님은 만신창이였습니다. 채찍에 맞아 찢겨진 몸과, 온갖 비난과 조롱에 시달린 마음은 예수님의 걸음을 더디게 했습니다. 여인들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요.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권사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전해 주시더군요. ‘사람이 태어날 때 왜 응애 하고 울며 태어나는지 아느냐’고,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고, ‘사는 게 힘들지 않고 재미난 일만 있다면 응애 울고 태어나지 않고 하하 웃으며 태어났을 거’라고. 살아보니,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살아보니, 사는 일이 참 힘듭니다. 꼬박 여든 여덟의 나이를 이 땅에 두고 가신 어머님의 삶도 수월치만은 않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병원을 오가며 치료에 힘쓰던 지난 일 년 여 시간은 그 중 힘든 세월이었을 겁니다. 세월에 장사 없는 법이라지만, 세월에 무너지는 인생의 한 날은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어쩔 수 없는 고생을 두고 그리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래서 한숨을 쏟고 눈물 흘릴 날이 많습니다. 이 눈물 많은 세상, 더 살면 무엇 하나 싶은 나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질긴 것이 목숨이고, 저승보다 이승이 나은 것 같아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날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길은 그게 그렇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고난의 길’ 그 막다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흘릴 눈물’이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들이 흘릴 눈물’을 염려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고난을 끝낼 자리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끝나면 ‘하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곧 끝날 고난보다 아직 아득한 고난을 남겨 둔 ‘너희’가 더 걱정이었을 겁니다.
어머님께서 세상을 등지고 하늘을 향하셨습니다. 이 땅의 수고와 고난을 내려놓고, 하늘의 영광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맨 날 다리가 말썽’이라시며 ‘걷는 수고’에 힘들어 하셨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금은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하늘나라’ 산책길을 거닐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 맛 없고 소화가 안 된다’시며 ‘먹는 수고’로 고생하셨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금은 ‘하늘의 양식과 맛나’로 배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도 성치 않고 코로나도 있어 교회 못 가서 죄송하다’고 ‘미안한 마음’으로 고생하셨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보고 싶어 하시던 주님 얼굴 마주하며 ‘하늘 교회’에서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선 어머니를 두고 눈물 흘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울 때입니다. 사는 일이 다 고생이고 수고인 날들을 지났어도, 어머님께서는 ‘하늘 길’을 따라 사셨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당할 인생의 고난 길에서, 어머님처럼 믿음을 다하여 ‘하늘 길’을 따라 살 수 있을 것인지, 그걸 두고 울어야 합니다. 어머님 가신 길을 우리도 따라 걸어 끝내 어머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으로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오늘’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 눈물을 씻고 그리움을 덜어, ‘오늘’ ‘낙원에 계실’ 어머님께 박수를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