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입니까?”

모세가 미디안 사람이 된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양떼를 몰고 가다 <호렙산>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걸 보지요. 불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불꽃만 타오릅니다. 신기한 광경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까이 가려하자, 떨기나무 가운데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깜짝 놀란 모세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일까요? ‘애굽’에서 ‘이집트 왕자’로 자란 모세였지만, 지금은 미디안에 숨어 사는 ‘양치기 모세’입니다. 지금 모세가 신 신고 다니는 미디안은 ‘거룩한 땅’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그 땅으로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매끄러운 돌로 쌓고, 번쩍 거리는 금덩이로 치장한 ‘건물’이어야 ‘거룩한 곳’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자리’ 거기가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치는 모세를 찾아가셔서, 그 땅을 거룩한 곳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양치는 일상’으로 찾아오셔서 ‘여기’를 ‘거룩한 곳’으로 삼으려 하십니다. ‘우리’의 ‘여기’가 ‘하나님 앞’이고 ‘거룩한 곳’이라면, 이 하루는 함부로 밟고 다닐 땅이 아닐 겁니다. ‘내 발’에서 ‘신을 벗고’,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며 겸손히 살아야 할 하루입니다.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정체를 밝히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신 까닭도 드러내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부르짖음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고…인도하여…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데려가려 하노라.” 모세가 ‘이집트 왕자’로 애굽에서 지내던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종’으로 지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에 숨어 ‘양치기’로 사는 40년 동안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노예’로 살아야했습니다. 노예 살이는 혹독했고 참담했습니다. 지난 80년간, 이스라엘 민족의 한숨이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만들고 그들의 눈물이 나일강을 범람케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다 듣고 계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근심’을 다 알고 계신답니다. 그래서 지금 ‘내 백성’을 건져내고,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려고 우리에게도 찾아오신 겁니다. 고통과 신음 중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땅’으로 인도해 가시려고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땅의 약속’을 성취하시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이 일에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러니 “이제(어서) 가라.” 느닷없는 부르심이고 난데없는 보내심입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는 ‘왕년’의 일입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양을 몰고 다니면서 물을 먹이고 똥을 치우는 일로 40년을 보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도, 히브리인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다가 ‘누가 너를 우리의 다스리는 자로 삼았느냐?’는 핀잔을 들었던 모세가 아닙니까. 그걸 생각자면 모세에게는 지도력이 1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로’에 맞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단 말 입니까? 턱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한 번 빼 보는 괜한 말이 아닌 겁니다. 그게 ‘팩트’입니다. ‘내가 누구라고’ 감히 그런 일을 맡아 나선단 말인가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님이 누구신가’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중요하게 여겨서 자꾸 ‘내가 무엇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내가-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