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라 ‘길잡이’로 (21.04.18)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사람이 걸어서 오간다는 것이 마노리는 신기하고 또 편안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뿐 아니라,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도 가면서, 길 위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하고 마주친 사람들이 어긋나게 제 길을 가고 나면 길은 비어 있어서 누구나 또 지나갈 수 있었다. 길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란 것을 마노니는 길에서 알았다. 사람이 동쪽 마을에서 서쪽 마을로 갈 때, 동쪽 마을에서는 간다고 해도 서쪽 마을에서는 온다고 하니, 길 위에서는 갈 왕往과 올 래來가 같고,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마노리는 고삐를 끌고 걸으면서 알았다』
– 김훈 <흑산> 中

사람 사는 마을은 섬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마을을 오가며 ‘마주치기도’ ‘어긋나기도’ 합니다. 마주쳐 얼싸 안는 만남이 있고 더러 어긋나는 마주침도 있지만, 그게 다 사람 사는 모양이고 형편인 거지요. 어긋나는 마주침 같은 건 없는 게 낫다 하겠으나, 그래도 그나마의 모양과 형편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마주치는 일 없으면 세상 편하게 살 수 있겠다 싶지요.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이 석 달 열흘 쯤 지내보면, 그게 얼마나 외롭고 허튼 마음인지 알게 될 겁니다. 더 못 견뎌 부리나케 마당을 나서며 한 마디 하고 말걸요. “제 아무리 부처님 공자님도 혼자서는 못사는 법이지, 암만.”
사람 사는 일이 산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어서, 이집 건너 저 집이 각각의 마을이 되기도 합니다. 먼 마을 소식이야 간간 듣는 귀 동냥이지만, 가까이 둔 집과는 그럴 수가 없어요. 밥그릇 숟가락이 몇 개고 내다 넌 속옷이 몇 벌인지를 훤히 들여다보며 사니 말입니다. 그게 사람 사는 거라지만, 그래서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생깁니다. 괜한 입방아에 마음이 쓸리고, 오르내리는 구설수에 마을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굴뚝처럼 세웁니다. 사람들은 왜 자기 말 하는 걸 그리 싫어하면서도, 남의 말 하는 건 또 그리 좋아하는 걸까요. 그런 일 한 번 겪고 나면 다시 마음이 달라집니다. “혼자 사는 게 속 편해.”
그런데도 떠나지 않고 남아 사는 건 속 편한 게 다는 아니어서 일겁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란 것을” 아는 까닭에 남아서 장작을 패고 물을 길고 마실을 나서는 거지요. 어디 ‘가는’ 일만 있을까요. ‘가는’ 자리는 언제나 ‘오는’ 자리이기도 해서, 사람살이의 왕래(往來)는 이 집과 저 집에 ‘길’을 냅니다. 그랬을 겁니다. ‘길’이 있어서 오고 간 게 아니라, 오고 가다 보니 ‘길’이 난 거지요. 산 깊은 곳에 오두막 짓고 살아도 길은 나는지 모르겠으나, 그 길이 달구지 끌 만한 폭은 못될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밟고 지났기에 마을길이 이리 넓은 걸까요.
사람 사는 길이 그렇듯 ‘믿음의 길’도 오고 가는 것으로 나는 것이겠습니다. 나서지 않으면 믿음이 설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믿음을 확인할 수 없지요. 흰 옷 입고 홀로 산 속에서 머리를 조아린다고 믿음이랄 수는 없습니다. 그게 ‘믿음’인지 아닌지는 나서는 길, 만나는 길목에서 확인됩니다. 문득, 교회란 마을이 아니라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마다의 집과 마을을 잇는 길이 교회여서-사람들은 교회에서 마주치고, 교회에서 어긋나기도 합니다. 길에는 주인이 없어서, 누구도 ‘교회’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언제나, 또 누구나 지나갈 수 있도록 다시 비어 있어야 할 겁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사람이 걸어서 오간다는 것이…신기하고 또 편안”합니다. 아내 생일을 맞아 엽서 한 장을 적었답니다. 그 한 구절이 이랬습니다. “‘길’은 될 수 없지만, ‘길잡이’는 되어 당신 곁에 꼭 붙어 있으려 해요.” 마흔 줄 넘는 긴 엽서에서 아내는 그 구절이 제일 좋더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길’이 되려다 보니 세상도 시끄럽고 더러는 교회도 시끄러운 가 봅니다. 세상 시끄러운 것도 두고 볼 일은 아니겠으나, 교회까지 시끄러운 건 더 두고 볼 일이 아니지요. ‘내가 곧 길이라’ 하셨으니, 길 노릇은 그분께 맡길 일입니다. 길 지나는 이들 곁에서 길잡이로 살면 그게 복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