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피우느라…

…‘창’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되도 않은 잡문을 거두고 빈 지면이 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뭔가를 채워 내 보내려는 마음은 욕심일까요, 불안일까요?^^ 아래 펼쳐놓은 글은 안식년 중 설교했던 ‘룻기’의 시작 대목입니다.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의 생각이 머물다 가는 요즘이어서, 지난 기록을 꺼내 보았습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허삼관매혈기>의 한 구절인데, ‘룻기’를 추억하면서 ‘룻기’를 다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짐이 너무 많아 책을 많이 못 들고 왔습니다. 고르고 골라 손에 들고 온 책 중 하나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입니다. ‘위화’는 “세계가 사랑하는 중국 최고의 작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소설가로 알려 졌습니다. <허삼관매혈기>는 주인공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매혈’ 곧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역정 이야기지요.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고 ‘피’를 팔아 돈을 벌어 산다는 말이 생경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중국 문화혁명을 전후한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옥수수 죽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해야 했던,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여서, ‘피’를 팔아야 그나마 사는 흉내라도 낼 수 있었던 한 남자의 생애에 깃든 아픔과 연민이 빼곡하게 들어있는 소설입니다.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소설이 ‘평등’에 관한 소설이라고 밝혔습니다. 평등을 바라지만 그러나 끝내 불평등의 지게를 벗을 수 없었던 한 사람, 그가 소설 속 ‘허삼관’입니다. 그가 담아 산 ‘매혈의 인생’에 어떤 평등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위화라는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건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인생>이라는 소설이지요. <인생>은 문화혁명의 격변기, 부농이며 지주였던 ‘복귀’라고 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 이 남자는 인생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유업으로 물려받은 재산은 도박으로 탕진하고, 뒤늦게 맞은 사랑하는 아내는 지병으로 세상을 등집니다.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 녀석은 수혈을 받다 의사의 실수로 앞세워 보내지요. 하나 남은 딸은 귀 먹고 말 못하는 장애인이었는데, 편두(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병)라는 장애를 가진 남자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딸/사위에게서 손주를 보지만 손주의 생명과 딸의 목숨을 바꾸어야 했고, 운반 일을 하던 사위마저 작업 중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손주와 함께 쓸쓸한 노년을 보내던 주인공은 아끼던 손주마저 잃게 되지요. 삶은 콩을 미친 듯이 주워 먹은 손주의 배가 터져 숨을 거둔 겁니다.
소설은 늙고 가난한 농부가 된 주인공 ‘복귀’가 쓸쓸하게 밭을 가는 모습을 아련하게 그리며 끝을 맺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복귀’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작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그것이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가지든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거지요.
어찌 보면 자조처럼 들리고 또 어찌 보면 초연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나는 안다. 황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는 것을. 나는 광활한 대지가 바야흐로 결실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모습이다. 여인이 자기 아이들을 부르듯, 대지가 어두운 밤이 내리도록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 드리운 어두움은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 숙명적인 것이며, 어쩌면 그러기에 그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 그렇게 그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어쩌면, 그게 작가가 해석한 ‘평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성경의 본문은 룻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짧은 서두 몇 구절을 살펴보게 될 텐데, 룻기를 시작하는 짧은 서두를 통해 우리는 마치 저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절망과 고독을 처절하게 경험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볼 겁니다. 그 인생의 주인공은 여인이며, 그 여인의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다만 우리는 나오미에게 숙명처럼 깃들었던 ‘인생’이 그저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유념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과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이 여인의 구구했던 ‘인생’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