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라 ‘길잡이’로 (21.04.18)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사람이 걸어서 오간다는 것이 마노리는 신기하고 또 편안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뿐 아니라,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도 가면서, 길 위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하고 마주친 사람들이 어긋나게 제 길을 가고 나면 길은 비어 있어서 누구나 또 지나갈 수 있었다. 길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란 것을 마노니는 길에서 알았다. 사람이 동쪽 마을에서 서쪽 마을로 갈 때, 동쪽 마을에서는 간다고 해도 서쪽 마을에서는 온다고 하니, 길 위에서는 갈 왕往과 올 래來가 같고,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마노리는 고삐를 끌고 걸으면서 알았다』 – 김훈 (더 보기…)

“내가 누구입니까?”

모세가 미디안 사람이 된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양떼를 몰고 가다 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걸 보지요. 불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불꽃만 타오릅니다. 신기한 광경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까이 가려하자, 떨기나무 가운데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깜짝 놀란 모세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일까요? ‘애굽’에서 ‘이집트 왕자’로 자란 모세였지만, 지금은 미디안에 숨어 사는 ‘양치기 모세’입니다. 지금 모세가 신 신고 다니는 미디안은 ‘거룩한 땅’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그 땅으로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매끄러운 돌로 쌓고, 번쩍 거리는 금덩이로 (더 보기…)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더 이상 너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 내가 날아갔을 때 // 네 숲에 사는 새들은 목이 쉬었다 – 송기원 지난 목요일, 박양순 어머님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눈물 적신 지체들이 여럿이었더랍니다. ‘더 이상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곳으로 날아갔을 때, ‘그 숲에 살던 새들’의 ‘목 쉰 울음’이 들렸습니다. 아래 옮긴 글은 어머님의 입관예배에서 나눈 설교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관원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채찍에 맞고 끝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작은 흔적을 담아 보려는 시간이지요. 십자가 형 선고를 받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도 언덕까지 이르는 길을 라 부릅니다. 를 지나실 때, (더 보기…)

게으름을 피우느라…

…‘창’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되도 않은 잡문을 거두고 빈 지면이 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뭔가를 채워 내 보내려는 마음은 욕심일까요, 불안일까요?^^ 아래 펼쳐놓은 글은 안식년 중 설교했던 ‘룻기’의 시작 대목입니다.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의 생각이 머물다 가는 요즘이어서, 지난 기록을 꺼내 보았습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 한 구절인데, ‘룻기’를 추억하면서 ‘룻기’를 다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짐이 너무 많아 책을 많이 못 들고 왔습니다. 고르고 골라 손에 들고 온 책 중 하나가 ‘위화’의 소설 입니다. ‘위화’는 (더 보기…)

‘영혼의 문둥병’

이곳에 나를 부려 놓았다 / 오래전 문둥이들의 집성촌 / 세상이 문둥이에게서 물러서듯 / 세상으로부터 물러서기 위해 // 이목구비 뭉개진, 환하디환한 태양 아래서 / 중개인은 말했지 / ‘명당이에요. 슬픔은 그들이 다 가져갔거든요.’ // 그래? 툭툭 떨어진 발가락 같은 돌맹이들 / 진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리는 실개천 / 나균인 듯 들러붙는 납거미 거미줄 / 돌마다 물마다 스민 얼 / 나는 손목 없는 그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 병이 깊어질수록 본능은 더 승해졌다지 // 그래선가? / 이 곳의 바람은 쓸개를 훑으며 분다 / 의뭉스런 새벽안개 / 화농의 상처 덧나는 석양의 때 /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한 울음소리 // 이곳에 와 나는 살아간다 / 죽어 간다 / (더 보기…)